2013년 2월 23일 토요일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 김진송


013.

  알라딘 신간평가단(에세이분야) 활동의 차원에서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이다. 평가단은 전 달에 출간된 책 몇 권을 고르고, 알라딘 측에선 그걸 취합해 두 권의 책을 제공한다. 평가단을 시작한 지 세 달이 지났는데, 내가 택한 책이 모두 선택된 건 첫번째 달뿐이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이하 '이야기')는 내 선택지에 없던 책이다. 각종 인터넷 카페에서 진행되는 서평단 등의 활동을 관둔 건, 그저 '공짜'를 바라고 관심도 없는 책을 억지로 읽고 맘에도 없는 감상을 써내려가는 데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표지와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른다. 나도 제목에 혹해 <이야기>를 1차 후보군에 넣었다.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야기'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만으로도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의 가장 큰 미덕(?)인 미리보기를 누른 순간 바로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한두 페이지를 가득 메운 인형 사진과 스케치, 짤막한 토막글이 보였다. <끌림>(이병률)의 느낌도 났지만 인형의 이미지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이때문에 1월의 신간에세이로 <이야기>가 선정됐을 땐 적잖이 실망했다.(12월에 출간된 에세이 중 읽고 싶은 게 많았다) 인형과 글로 어줍잖은 감성팔이나 하겠구나, 지레짐작하고 대충 거들떠보려 했다. 사실 초반 몇 이야기는 그랬다. 인터넷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이미지와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더 읽으면서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비밀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은 매번 달라졌습니다.
  아니 사건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사건은 매번 똑같았지만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언제나 달라졌지요. 말하자면 그 집은 끔찍한 사건을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만 끔찍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바로 당신이 지금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_'비밀의 집', 63쪽

  이 이야기의 이미지는 육각면체의 벽돌집이다. 그 위엔 사람이 하나 앉아 있고, 집 안에는 해골이 누운 관과 밖을 빼꼼히 쳐다보는 유령이 있다. 집 아래에는 이 인형들을 움직이는 작은 톱니바퀴들이 있다. 무언가 그 안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사물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건 사물을 보는 사람인 나다. 길거리는 다 큰 어른에게는 그냥 길거리일 뿐이지만 눈이 반짝이는 아이들에게는 모험을 떠나는 여행길이다. 사물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이야기를 만든다. 찰나의 틈바구니에서 새어나오는 이야기를 읽는 맛이란 얼마나 달콤한지!

  <이야기>에서 인용한 장 그노스의 '암흑의 신 페트롤리우무스의 전설'은 매우 재밌는 텍스트다. 석유를 비유한 암흑의 신 페트롤리우무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도 적절히 어우러졌다.(원 텍스트인 <인간과 사물의 기원>을 장바구니에 넣는 계기가 되었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아내의 꿈>은, 비록 오래된 클리셰지만 흥미롭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인 '개와 의자 이야기'는 그 자체로 뛰어난 단편소설이다. 인간과 개, 의자의 관계, 외형적 닮음에 대한 글인데 꽤나 통찰력 있다.

  의자가 독립적이면 독립적일수록 인간은 오히려 의자에게 의지하려 들었다. 인간의 움직임은 조금씩 둔화되었고 점점 더 한 곳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많아졌다. 그게 새로 발견된 인간의 습성이었다.
  인간은 의자에게 그랬던 것과 똑같이 개에게 의존하는 일이 많아졌다. 개가 진간에게 충성할수록 그리고 인간이 개에게 의존할수록 어찌된 일인지 개의 자유는 점점 줄어들었다. 개는 그걸 사랑이라고 믿었고 불만은 없었다.
  인간은  늑대의 후손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어 친구라고 부르는 대신 원래 자신과 똑같은 특성을 지닌 늑대에게는 악마의 탈을 씌워 박멸해버렸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친구를 만든다.
_'개와 의자 이야기' 중, 276쪽

  <이야기>는 그 자체로 훌륭한 엽편소설집이고, 상상력의 보고이며, 사물을 다르게 보여주는 책이었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은 의외의 곳에서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자명한 원칙을 알려준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 윌 슈발브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 윌 슈발브
(★☆☆☆☆)



  많은 사람이 호평을 했다고 그 책이 모두에게 재밌고 감명깊은 책은 아니다. 일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몇 분은 내 생각에 동조해줬다. 남들이 좋다고 칭하는 책에 반대하는 글이라도 올라오면, 혹여나 욕을 먹을 수 있어 그게 겁나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감추는 건 독자에게도, 저자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모든 사람은 주관적이니 말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 아닌 이런 잡담을 하는 이유는, 이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기는 했다. 다섯 꼭지 정도였나. 웬만하면 독서를 도중에 그만두지 않는데,도무지 읽기를 참기 힘들어서 책을 덮고 책장에 꽂았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책을 건네주었는데, 친구의 삶엔 어떤 울림을 줬을까 궁금하다.(한편으론 남들이 받았을 감동 때문에 분하기도, 부럽기도 하다)

  편집장인 윌 슈발브와 투병 중인 그의 어머니가, 단 둘만의 북클럽에서 약 2년 동안 책에 대해 말한 모든 이야기를 쓴 책이다. 가족과 주변 인물의 일상과 과거, 현재를 바탕으로 책에 대해 저자와 어머니의 의견, 토론, 추억이 함께한다.

  책은 예정된 이별의 아픔을 책과 그 관계에 대해 대화하면서 조금씩 삭혀가는 과정을 그린다. 아픔극복과 책은 매력적인 소재이나 둘 사이를 끈끈히 묶는 데 조금은 불협화음이 느껴진다. 작년에 읽은 <혼자 책 읽는 시간>(니나 상코비치)와 비슷한 느낌이다. 소설보다 재밌는 게 우리네 진짜 인생이라지만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이야기는 영 매력적이지가 못했다. 에세이는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콕콕 박히거나, 일상의 작은 편린을 너무나도 멋있게 보여주거나, 영혼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별과 슬픔이라는 상처를 독서로써 메꾸는 과정을 그린 이 책은, 그 어느 부류에도 들지 못했다. 이야기도 다소 중구난방이고.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뭐, 그렇다는 거다. 차라리 딱딱한 서평을 보는 게 재밌을 성싶다.

  영 쀨(feel)이 오지 않은 책이었다. 서점에서 책을 들었다 얼마 못 보고 내려놓은 이유는 따로 있지 않았다.

2013년 2월 15일 금요일

절망노트

절망노트, 우타노 쇼고

밀실살인게임,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우타노 쇼고 신작.
중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는 숀이라는 학생은 절망노트라는 이름의 일기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그러자 자신을 괴롭히는 일당이 하나둘씩 죽어가는데…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누가 학급에 피바람을 몰고 왔는가?

존 레논은 말했다. 신은 인간의 고통을 가늠하는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단독 단호하게 말한다 신 따위 있을 턱이 없다!
_본문 중에서

쉬면서 집에 처박혀 책만 읽는 게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2013년 2월 14일 목요일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발렌타인데이에 달달한 영화를 혼자 본 게 참으로 거시기하지만, 여튼 재밌다.
로맨스영화도 참 오랜만에 본 듯.
조울증에 감정을 자제하지도 못하는 남자, 한없이 우울해하고 자기비하에 빠진 여자, 이 둘이 만나 춤을 통해 자신과 다른 이들을 변화시키는 이야기.
주인공 둘은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미친 사람들인데, 그런 것까지 메꿔줄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지 않을까.
브래들리 쿠퍼는 역시나 멋있고, 한없이 어리게만 보였던 제니퍼 로렌스는 이…쁘다

2013년 2월 13일 수요일

전자책 리더기 크레마터치 구매

교보문고 sam 단말기가 나오기 일주일 전, 고민 끝에 결국 한국이퍼브를 지원하는 크레마터치를 덜컹 사버렸습니다.
기존에 있덩 스토리 K HD는 영 사용하기가 불편해서(교보 전용) 확장성 좋은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기기로 갈아탄거죠.

화면 하단에 물리키보드가 있던 스토리보다 세로길이는 적네요.
스토리 커버에 넣으려고 했는데 세로로 짧으니 좀만 흔들어도 옆으로 쑥 빠져버리는 안습한 상황.
크레마로 계속 전자책 생활을 할 것 같으니 이왕 기기 산 거 전용 플립케이스도 질러버렸습니다.

느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리도 느릴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키보드 터치도 느려, 화면 전환도 느려, 다 느려요 그냥.
2.0버전으로 펌웨어를 하니 훨씬 낫군요.
처음부터 이렇게 출시했어야지, 정말 초기 사용자들은 베타테스터나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빌어먹을 스크롤 잔상 때문에 전자도서관에서 책 대여를 할 땐 폰으로 하고 다운만 기기로 받는, 뭔가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만족도는 높습니다.
스토리 K HD보다 해상도가 낮지만 텍스트만 읽을 경우는 큼 불편함은 없습니다.
다만, 이펍 파일 볼 때만…
화면은 쨍한 느낌이 덜한데 오히려 책읽기에는 이게 더 편한 느낌이 듭니다.
기기 뒷편이 평평해서 기기를 쥐었을 때 많이 불안합니다.
핸드 스트립이라도 달아야 할 지경.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전혀 없음)
무게는 200g 정도로 매우 가볍습니다.
무게니 두께니 시집 한 권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아직 소설 외의 진중한 책은 읽기 힘듭니다.
스크린을 통해 읽다보니 느낌상 상대적으로 가벼운 텍스트를 찾게되더군요.
페이지 넘기는 데 터치하는 게 많이 짜증나네요.
제가 왼손잡이인데 대부분 책이 화면 오른쪽을 눌러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니 불편합니다.
스토리의 물리키가 이럴 땐 빛을 발하는군요.

크레마는 전자도서관(메키아, 교보도서관)을 이용할 때 사용하고, 아이패드으로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앱을 사용합니다.
얼마 전에 출시된 이 위대한 앱!
단돈 149.99달러면 앞으로 제공될 200여권의 책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오픈파트너 제도)
안드로이드로도 출시될 예정이고, 오픈파트너 자격은 안드로이드로도 유지된다고 하니 차후에 크레마로 읽을 예정입니다.
물론 패드로도 읽긴 할텐데… 솔직히 너무 무거워요…
앱은 정말 좋은데.

마지막으로 종이책.
나의 사랑 종이책.
절대 너를 버릴 수 없단다.